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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32. 바보같은 삶 그러나 빛이 된 삶 (06/26 ~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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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구의 행복비타민6632회

2023.06.26 (월)

6632. 바보같은 삶 그러나 빛이 된 삶

이선구의 행복비타민 6632회

2023.06.26 (월)  


6632. 바보같은 삶 그러나 빛이 된 삶


누군가 여러분에게 ‘바보’라고 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기분 나쁘고, 자존심 상하고 몹시 불쾌할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적으로는 평생 바보라는 소리를 듣고 살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으며 바보같은 삶이 오히려 성공한 삶이라는 말을 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의사였지만 집 한 채 없이 평생 가난 한 사람들을 돕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며 겸손한 삶을 살다가 가신 한 박사 이야기 입니다.

바보 의사 장기려 박사 이야기 입니다.

"내가 밤에 층계있는 병원 뒷문을 열어 놓을 테니 어서 집으로 가세요."

장기려 박사는 어느 생활이 몹시 어려운 사람이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을 해야 하는데 돈이없어 막막해 하고 있을때 이를 눈치채고는 병원 뒷문으로 몰래 빠져나가게 해 주었던 것입니다.

“이 환자에게는 닭 두마리 값을 내주시오. – 원장”  

병이 나으려면 무엇보다 잘 먹어야 하는환자에게 장기려 박사가 써준 처방전 입니다.

서울대, 부산대의대 교수, 부산 복음병원 원장을 지냈지만 그가 세상을 떠났을때 그에게는 방한칸 없었습니다. 자신의 소유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 나누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1947년, 김일성대학 의과대학 교수겸 부속병원 외과과장으로 부임할때 "주일에는 일을 할 수 없다"  는 조건으로 부임 했고, 환자를 수술할 때는 항상 기도하고 시작했습니다.

월남 후인 1951년 5월부터 부산에서 창고를 빌려 간이 병원을 설립하고 피난민들과 전쟁 부상자들을 무료로 진료하기 시작 했는데, 그것이 복음병원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는 1968년 당시 100원 하는 담뱃 값만도 못한 월 보험료 60원에 뜻있는 사람들과 ‘청십자 의료보험 조합’ 설립하여
1989년 전 국민에게 의료보험이 확대될때까지 20만명의 영세민 조합원에게 의료 혜택을 해주었 습니다.

국가보다 10년 앞선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의료보험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그를 이렇게 불렀습니다.
​바보...장기려박사 그는 “바보라는 말을 들으면 그 인생은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인생의 승리는 사랑하는 자에게 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철저히 청지기의 삶을 살았고, 주님만을 섬기며 겸손하게 살았습니다.

그는 평생 가난했지만 다른 사람들을 부유하게 했고, 집 한채 없었지만 사람들에게 따뜻한 사랑을 베풀었고, 뇌경색으로 하반신이 마비될 때까지 무의촌 진료를
계속 다녔습니다.

그는 자신을 드러내기를 싫어했고, 자신이 칭송 받는 것을 싫어했고, 오직 주님을 높이고 섬기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는 이웃과 나누며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아내에 대한 그의 극진한 사랑은 육체나, 환경을 초월한 영혼과 영원의 사랑이었습니다.

1950년 12월 평양의대병원 2층 수술실에서 그가 밤새워 가며 부상 당한 국군장병들을 수술하고 있을 때 갑자기 폭탄이 병원 3층에 떨어졌습니다.

국군들은 모두 재빨리 철수해야 했습니다. 그 바람에 그는 사랑하는 아내와 생이별을 하게되었고, 일평생 빛바랜 가족사진 한장을 가슴에 품고 아내를 그리워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이 그에게 재혼을 권했지만, 그는 언제나 똑같은 말을 되풀이 했습니다.

"한번 사랑은 영원한 사랑입니다. 나는
한 여인 만을 사랑하기로 이미 약속을
했습니다. 나는 사랑하는 나의 아내와 영원히 살기 위해서 잠시 그저 혼자 살겠습니다."

그가 부인을 그리며 1990년에 쓴 망향편지는 우리들의 가슴을 에는 듯합니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당신인 듯하여 잠을 깨었소. 그럴리가 없지만, 혹시 하는 마음에 달려가 문을 열어 봤으나 그저 캄캄한 어둠 뿐… 허탈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불을 밝히고 이 편지를 씁니다.'

미국에서 북한을 많이 도운 그의 제자가 북한당국과 합의하여 중국에서 장기려박사 부부를 만날 수 있도록 주선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어코 그 기회를 사양하였습니다. 그런 특권을 누리면 다른 이산가족의 슬픔이 더 커진다 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그는 결국 빛바랜 사진을 보면서 아내를
그리워 하다가 만나지 못하고 1995년
12월 25일 성탄절 새벽 1시 45분 85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 가셨습니다.

그때 한국의 언론 은 ‘한국의 슈바이처’ 또는 ‘살아있는 작은 예수’가 우리 곁을
떠났다고 아쉬워 했습니다.

그는 어두운 밤과 같은 그 시대에 밝은 빛을 비추며 주님과 병든 사람들을 섬기면서 겸손하고 가난하고 따뜻한 삶을 살다가신 분이었습니다.

그가 죽기 전에 남긴 유언은.. "내가 죽고 나거든 나의 비문에는 '주를 섬기면서 살다간 사람' 이라고 적어 달라" 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보라고 부른 장기려 박사님을 지금도 잊지않고 그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것처럼 바보의 삶은 영원한 천국인의 삶입니다.

저도 장기려 박사님 처럼 바보처럼 사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나의 삶을 질투와 시기의 거짓음해로 나를 모함해서 쓰러지게 할지라도 오직 주님만 바라보던 스데반처럼 '주바라기' 로 살고 싶습니다.

오늘도 우리들 주변의 어려운 분들을 돌아보며 사랑을 나누고 실천하는 귀한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뇌혈관 확장시술을 여러 분들의 기도덕분에 잘받고 퇴원한후 거짓모함에 결코 현혹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신실한 동역자님들에게 올리는 사랑하는 이선구 목사의 글입니다.


인천광역시 계양구 황어로134번길 28이선구의 행복비타민 | 운영인  이 선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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