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구의 행복비타민 6806회차
2024.1.16(화)
6806. 30년 동안 나를 지켜준 글귀
시장에서 30년째 기름집을 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고추와 도토리도 빻아 주고, 떡도 해 주고, 참기름과 들기름도 짜 주는 집인데, 사람들은 그냥 기름집이라 합니다.
그 친구 가게 문을 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있습니다. 달력? 가족사진? 아니면 광고? 궁금하시지요?
빛바랜 벽 한 가운데 詩 한 편이 붙어 있습니다. 그 詩가 윤동주의 <序詩> 입니다. 시장에서 기름집을 하는 친구가 시를 좋아한다니? 어울리지 않나요? 아니면?
어느 날, 손님이 뜸한 시간에 그 친구한테 물었습니다.
"저 벽에 붙어 있는 윤동주 '서시' 말이야. 붙여둔 이유가 있는가?"
"으~음, 이런 말 하기 부끄럽구먼."
"무슨 비밀이라도?"
"그런 건 아닐세. 손님 가운데 말이야. 꼭 국산 참깨로 참기름을 짜 달라는 사람이 있어."
"그렇지. 우리 아내도 국산 참기름을 좋아하지."
"국산 참기름을 짤 때, 값이 싼 중국산 참깨를 반쯤 넣어도 손님들은 잘 몰라. 자네도 잘 모를걸."
"......"
"30년째 기름집을 하면서 나도 사람인지 라 가끔 욕심이 올라올 때가 있단 말이야. 국산 참기름을 짤 때, 중국산 참깨를 아무도 몰래 반쯤 넣고 싶단 말이지.
그런 마음이 나도 모르게 스멀스멀 올라올 때마다 내 손으로 벽에 붙여놓은 윤동주 <서시>를 마음속으로 자꾸 읽게 되더라고."
"....."
"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이 귀절을 천천히 몇번 읽고 나면 나도 모르게 시커먼 욕심이 사라지고 마음이 맑아지는 것 같아.
그러니까 30년 동안 저 詩가 나를 지켜준 셈이야. 저 시가 없었으면 양심을 속이고 부자가 될 수도 있었는데. 하~하~하~."
그 친구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도 모르게 그 친구가 좋아하는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가톨릭 마산 주보 '영혼의 뜨락' 중에서 |